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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31 14:48
니체, 문학과 철학의 두물머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5  

니체는 수수께끼다. 달의 뒷면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는 수수께끼를 내는 자이기도 하고, 그것을 푸는 자이기도 하고, 또 그 스스로가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그는 철학자이지만 시도 쓰는 문학가이기도 하다. 문학은 비유를 이용해서 삶을 이야기하는 기술이다. 니체는 그런 일이라면 일찌감치 달인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철학이라는 형식 속에 담아냈다.
  차라투스트라, 이것은 이름에 불과하다. 이동용, 이것도 이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는 사귀어 봐야 안다. 이름만 가지고 그 사람이 어쩌니 하는 일은 선입견을 형성하기에 충분할 뿐이다. 물론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이름이다. 선과 악을 다 요구하는 신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동용은 안동 출신이다. 남자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니체가 이 인물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책 제목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저자 이동용은 니체의 책을 순서대로 따라간다. 대문을 지나 마당을 지나 현관을 지나 거실을 지나 어떤 방을 지나듯이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간다. 니체의 눈이 되어 사물을 바라본다. 때로는 그 스스로 니체가 되어보기도 한다. 그의 호흡으로 문장을 내뱉어보는 듯도 하다.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도록 내버려두는 것, 이것은 소위 말하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독서에 임하는 것이다. 때리면 맞아주는 거다. 위로해주면 눈물도 흘려보는 거다. 그냥 믿고 따라주면 자기도 모르게 묘한 힘이 전달된다. 생철학의 힘이다. 논리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어떤 소리와 같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하는 존재는 생각을 잘해야 한다. 잘 살고 싶으면 생각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니체는 문학과 철학이라는 두 개의 종목에서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시를 쓰며 철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개의 커다란 물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물을 형성했다. 초인은 바다와 같다고 했다. 바다는 다 받아서 바다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런 모성애를 닮았다. 괴테의 영원한 여성성도 닮았다. 구름이 모이고 모여 보여준 번개와 같다. 그 뒤를 따르는 천둥소리도 닮았다. 그것이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들이다.
  종교로 번역되는 라틴어 레리기오의 기원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레레게레라고 주장했다. 같은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는 행위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소에게서 되새김질을 배우라고 했다.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읽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암기하고 다시 그것을 끄집어내서 되새김질을 하라는 것이다. 되새김질은 단순한 암기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암기는 그저 전제조건이 될 뿐이다. 위에 음식이 담겨 있어야 되새김질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니체의 요구 사항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니체는 백 개의 각운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에 어떤 풍파가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백 개의 문장만 되새김질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면 삶의 현장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몸을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인생은 깨달을 기회다. 노래하고 춤추며 즐길 기회다. 한계는 없을 수 없지만, 그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설 때 초인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넘을 수 없을 때, 그것이 운명이라고 여겨지면 아모르 파티를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의 정언명법이다.